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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벤쳐지원

규제에 성장 막힌 IT 기업들

조선 2014.6.12.

1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날아온 레나테 브라우너 부시장은 온종일 이곳에서 국내 벤처기업 관계자 200여명과 언론, IT(정보기술) 관련 기관 등을 상대로 투자 유치 설명회를 가졌다.

브라우너 부시장은 "빈에서 벤처기업을 설립하면 오스트리아 정부와 공동으로 지원금을 최대 100만유로(약 13억7000만원) 주고, 연구개발(R&D) 예산의 10%까지 절세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다. 빈시(市)는 사전 신청을 받은 벤처 50여곳 가운데 2곳을 선발해 현지로 초청,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행사에 참가한 패튼코(PatentKO) 엄정한 대표는 "해외 서비스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유럽 정부의 지원이 있다는 것은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유럽 국가들이 국내 IT 기업을 자국(自國)으로 데려가기 위해 투자 설명회를 열고 제안서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유치 활동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앞선 IT 서비스와 기술을 들여와 자국 내 관련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 IT 벤처 유치 나서는 유럽

지난 2011년 5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넥슨 본사에는 한 외국인이 방문했다. 머리가 살짝 벗겨진 그는 유럽의 소국(小國) 룩셈부르크의 기욤 왕세자였다. 그는 넥슨 경영진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직접 만나 설득하면서 2010년 영국의 넥슨 유럽법인을 룩셈부르크로 옮기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 뒤로 그는 넥슨 유럽법인을 수시로 찾고, 한국에 올 때면 꼭 넥슨 본사도 방문한다. 넥슨 관계자는 "왕세자가 찾아와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묻고 직접 해결해주는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정부는 국내 게임업체들에 공개 제안서를 보냈다. 내용은 "이곳으로 옮겨오면 신작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10만유로(약 1억3700만원)씩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을 받은 70여개 업체는 독일과 실제로 투자 상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한국에서 수시로 투자 설명회를 열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IT 벤처기업에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약속한다. 룩셈부르크는 지식재산권을 통한 수익에 대해서는 80%까지 세금 면제를 해준다.

실제로 본사나 현지 법인을 옮긴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중견 게임사 모야소프트는 본사를 룩셈부르크로 옮겼고,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의 유럽 법인도 룩셈부르크로 옮겨 현지 사업을 키우고 있다.

◇게임업체 80% "해외 이전 의향 "

유럽 국가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게임업체 유치다. 넥슨·엔씨소프트 등 게임업체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만 연간 수천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국내에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가 많은 편이다. 청소년들이 과도하게 게임에 빠지지 않도록 자정 이후 게임 접속을 금지하는 '셧다운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게임업체들은 상대적으로 활동이 자유로운 해외 진출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1일 국내 90여개 게임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80.5%가 "규제를 피해 해외로 이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기술·인력 유출 우려도

유럽 국가들의 국내 IT 기업 유치 경쟁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갈린다.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하나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벤처기업이 해외에 쉽게 진출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수한 두뇌가 해외로 유출돼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제조업체들이 생산공장을 줄줄이 해외로 이전하는 가운데 '두뇌산업'인 IT·벤처기업까지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국내 산업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안근배 정책협력실장은 "두뇌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